음란귀의 저주 --- 스포츠조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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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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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태원에서 도량을 운영할 때였다.
 초겨울의 밤 공기가 제법 싸늘한 날, 골목길을 가는데
갑자기 젊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여자 둘이 내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잔뜩 겁을 짐어먹었다.
 "아줌마 저쪽으로 가지 마세요. 손에 뭔가를 들고 막 덤벼들어요."
 다행히 불한당은 아니었다. 아가씨들의 말이 미친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웬 여자가 골목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오며 "나 예뻐?" 하길래,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왜 안 예뻐? 왜 왜" 하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더욱이 손에는 뭔가 날카로운 것을 쥐고 있었다.
 
한번은 꽤 늦게까지 일을 보고 도량 문을 닫고 나오는데,
바로 앞 담벼락 쪽에서 젊은 남녀가, 듣기에 민망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주택가에서 너무 심하다 싶었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사랑을 나눈다는데
참견해서 무엇하랴 싶어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난데없이 음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애기 젖 줄까?"
 "아가야 엄마 예쁘지, 응?"
 난 화들짝 놀랐다. 연인인줄 알았는데,
음산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귀신이다'. 난 단숨에 직감했다.
 가만히 다가갔다. 웬 여자가 골목에 숨어 있었다.
 '엉? 지난번에 그 여자?'
 남녀의 신음소리는 그녀가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 내는 '원맨쇼'였다.
 잠옷 차림에 잔뜩 늘어뜨린 머리.
 한쪽 신발을 벗어들고는 젖을 주는 양 가슴에 비벼대고 있었다.
 군데군데 속살이 다 보였다.
 영락없이 음란귀에 쓰인 모습이었다.
 
색(色)기운이 워낙 강해, 솔직히 웬만한 남자였다면
깜짝 놀랐다가도 묘한 성적 충동을 일으켰을지 모를 일이었다.
 젊어 연애하다 이승에서 사랑을 맺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면
음란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음란귀는 접신 후 늦게 나타나는데, 처음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끼가 있다' 정도의 가벼운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까지 망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예쁜 여자 어린이나, 끼가 강한 처녀의 경우 음란귀에 씌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릴 적 예뻐해 주던 아버지가 일찍 죽자,
울며불며 무덤가에 따라갔다가 음란귀에 씌고 말았다.
 한번은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여자의 가장 소중한 정조를 지킬 도리가 없던 그녀는
윤간의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임신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임신을 한 뒤에는 미친 병에서 벗어난 듯 조용하고 얌전해졌다.
 가족들은 의논 끝에 "차리리 미쳐 날뛰는 것보다 좋으니
저대로 애를 낳게 하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태어난 아기는 피부색이 까맸다. 흑인의 아기를 낳은 것이었다.
 결국 '모성애' 치료작전은 무산됐다.
아기를 강제 입양시키자 그녀의 증세는 더욱 나빠졌다.
 
그녀의 오빠 둘이 그녀를 꼭 붙들어 데려왔다.
 그녀의 버티는 힘은 실로 항우장사였다.
 그녀는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며 싹싹 빌었다.
 "귀신이 목숨이 어딨어. 가만. 붙어있는 놈이 또 있네?"
 나는 축귀부를 연거푸 써서 그녀의 이마에 붙였다.
 "아이고 나죽네" 하는 곡소리가 합창으로 들리더니
머리를 늘어뜨린 한 서린 여인의 형상이 부지직 하며 살아졌다.
그 뒤로 2명의 작은 형상이 담배연기의 그림자처럼 빨려 나갔다.
그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후 시골로 잠시 요양을 떠났던 그녀는 모처의 음식점에서 일하다
두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지금은 마산에서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하게 살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