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X호의 공포.2 --- 스포츠조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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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X호의 공포(2)
 
"이 방은 내 방이야. 웬 녀석이 시집고 안간 처녀방에서 자는거야"
 눈만감으면 나타나는 '꿈속의 그 여자'… 극도의 공초감에 뜬 눈으로 밤 지새우고…
 
"내가 도대체 왜이러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K씨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별 이상 없는데요. 감기몸살로 열이 심하다 보면 헛 것이 보일 수도 있어요."
 K씨는 "아무 염려 말라"는 의사의 말에 '휴우'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머리 속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자기 요즘 왜 이래? 자꾸 밖에서 자고가자면 어떡해. 아빠한테 혼나잖아..."
 K씨는 약혼녀(은행원) P씨의 말에 한 방 먹은 듯
또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아침엔 어머니가 그랬다.
"너 요즘 왜 전에 안하던 외박이 잦니? 무슨 일 있어?
결혼을 앞둔 사람이 자중해야지."
 
그랬다. K씨는 은연중 귀가 공포증에 걸린 것이었다.
평소엔 집에 일찍 들어가 밤새 컴퓨터를 두들기거나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곤 했는데, 차츰 귀가시간이 늦어지더니
 아예 집에 안들어가는 날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K씨는 어머니에게도 약혼녀에게도
밤마다 '귀신의 장난'같은 일에 시달린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말이 돼야 말이지.'
 한번은 너무 괴로워 직장 선배 이 과장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심야의 샤워 물소리 소동의 전말을 꺼냈다.
역시 K씨만 '미친 놈'이 되고 말았다.
 "이 친구 비디오 좋아하더만 이젠 별 소리를 다하는구만.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직장 상사는 K씨가 진짜로 몇번이나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해도
 곧이 듣지를 않았다. K씨는 그날 만취했다.
K씨는 어떻게 집앞에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조심해서 가"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와 '부웅'하며 떠나가는 택시만이
 눈에 어른거렸다.
'정말 과민반응인가?'
 K씨는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 어 왜 안올라가? 어떻게 된거야?'
 K씨는 몇번이고 5층을 눌렀지만 어찌된 일인지
엘리베이터는 1층에만 있을 뿐 올라가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문도 안열려? 누 누구 없어요?
 나 좀 살려주세요.살려..."
 순간 문이 덜컥 열렸다. 그 여자였다.
"악."
이어 "우당탕탕." "쾅 쾅."
  
<< "자네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운명하셨네" >> 
 
K씨의 눈에 어렴풋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K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데 웬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란다.
 그 아가씨도 비명을 지르고 너도 비명을 지르고 해서,
경비 아저씨와 잠 자던 이웃들이 막 뛰어나오고 야단법석을 떨었단다.
도대체 너 요즘 왜 그러냐?"
 다음날 아침 K씨는 어머니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전날밤 K씨가 본 여자는 같은 동에 사는 사람이었다.
귀신소동으로 늘 잠이 부족한 K씨가 술에 취해 깜박 조는 사이,
밤늦게 허둥지둥 돌아온 그녀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고,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면서 그같은 소동이 벌어진 것이었다.
K씨는 그날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지만, 일찍 귀가해야 했다.
"오늘은 술 먹지 말고 꼭 일찍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K씨가 막 잠이 들락말락한 상태.
 K씨의 귀에 마치 술집에서 여러 남녀친구들과 뒤섞여 얘기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괴상한 목소리였다.
"이 방은 내 방이야.
웬 놈인데 시집도 안간 처녀방에 들어와 자는 거야? 빨리나가!"
순간 침대가 빙글 도는 것 같았다.
K씨는 또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악!"하며 정신을 차리는 순간,
뭔가 흰 물체가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방바닥에 나뒹군 K씨는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뭐냐? 누구냐?"
K씨는 이번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질렀다.
응접실에서 TV를 보던 어머니가 달려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응?"
 K씨는 내내 창문을 응시했다. 이번엔 창문이 열려 있었다.
어머니에게 잠꼬대를 했다고 핑계를 댄 K씨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다음날 회사에 나가니 3일 동안 부산지사에 다녀오라는
출장명령이 떨어졌다.
 집에 들어가기도 무시무시한데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다음 회사에서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 모처럼 잠을 푹 잤다.
그런데 출장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 11시쯤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 과장의 전화였다.
"K, 놀라지 말고 들어. 자네 아버님이 어제 밤에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조금 전에 운명하셨네."
 "네? 뭐라구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