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X호의 공포.1 --- 스포츠조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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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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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샤워소리에 화들짝 놀랐지만
 그것은 거실의 TV소리.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TV는 분명히 껐는데..."
 
그 악몽은 K씨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한 지 한달쯤 지나서 시작됐다.
 K씨는 유명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청년이었다.
 아버지가 토건회사의 전무직에서 정년 퇴직을 하자 단독 주택을 정리하고
서울의 모 APT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50평짜리 아파트는 전망도 좋고 평수도 넓어서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안방을 차지했고, 외동 아들인 K씨는
서재처럼 쓸 수 있는 현관 옆방을 정해 밤늦도록 책과 컴퓨터와 씨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응접실의 뻐꾸기 시계가 새벽 2시를 알렸다.
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든 K씨는 침대 옆으로
뭔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화들짝 눈을 떴다.
방안의 불은 환했고, 컴퓨터도 켜놓은 상태였다.
방문도 닫혀 있었다.
'괜히 놀랬나?'
 K씨는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K씨는 가위에 눌려 또한번 잠을 깼다.
'웬 꿈자리가 이렇게 뒤숭숭하지?'
 머리 맡의 등을 켜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방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가셨나?'
 K씨는 고개만 한번 갸우뚱 하고는 그냥 지나쳤다.
 K씨의 올빼미 생활은 여전히 계속됐다.
케이블TV의 심야프로도 보다가 컴퓨터도 두들기다가
새벽 두세시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열이 심해 악몽 꾸고 헛소리가 들렸나?>> 
 
보름 뒤. 아버지 어머니가 여행을 떠나고 없던 날,
K씨는 이상한 기운에 휘말려 다시 잠을 깼다.
젊은 여자가 샤워를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너무 가깝게 들렸다.
순간 K씨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데, 누가? 귀신의 장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K씨는 살짝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랬더니 거실의 TV에서 금발의 여인이 샤워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휴, 요상한 웃음의 정체가 바로 TV였구나 생각하니 맥이 풀렸다.
그러나 그 순간 K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냐 TV는 내가 분명히 껐는데...'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그가 다시 방으로 들어서려는데
또한번 젊은 여자의 샤워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번에는 분명히 욕실에서였다.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전율을 느끼며
K씨는 거실의 한 구석에 있는 욕실로 다가가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봤다.
그랬더니 스무살 안팎쯤 돼 보이는 여자가 샤워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누, 누, 누구야? 도, 도둑이냐? 귀 귀 귀..."
 화들짝 놀란 K씨는 입이 얼어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태연자약하게 허벅지를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야 말로 누구냐? 여긴 내집인데, 왜 들어왔어? 나가."
 K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콰당.
 
'꿈이었구나.'
 K씨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마엔 진땀이 배어 있었다.
감기 탓인지 몸도 으시시하고 열도 심했다.
순간 자기 방 창가로 희끄므레한 물체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열이 심해서 악몽을 꾸고 헛소리가 들렸나?'
 K씨는 거실로 나와 정신을 차릴 겸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다음,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K씨는 또 기절하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욕조의 샤워 꼭지에서
마치 꿈속의 처녀가 몸을 씻는 것처럼 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