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원혼.2 --- 스포츠조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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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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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중 처녀는 흰 거품을 수없이 내뱉었다
 
다음날 처녀의 어머니 사주를 살펴보았다.
기사 정묘 기유 병인이라.
세상에 별난 사주도 다 있다.
'소설로 쓴다면 족히 책 몇 권은 되겠군. 자식궁에는 원진이요,
인간 지옥살이 들어있어 20년이 넘게 그 고생인가?'
 처녀에 관계되는 중요한 것만 몇 가지 짚어봤다.
첫째, "아이(처녀) 출생 때에 좋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처녀의 어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집 옆에 뒤로 장의사가 있기는 했는데….
 임신 초기에 집안에 상사(喪事)가 나서, 애 아버지가 화장터에 갔어요."
 '쯧쯧, 어이없는 일이다. 출생이나 탄생 때 부정한 곳에 안가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거늘….'
둘째, "동물 그것도 고양이의 원신(寃神)이 있던데, 그건 또 뭡니까?"
 "아니 그런 것도 나옵니까? 아이 할머니가 관절통에 너무 다리가 아파 고양이를 여러 마리 해서 약을 자셨는데, 가끔 이 아이가 '엄마, 고양이 무서워'하고 움츠리곤 했어요.
 그것 때문인가요?"
 셋째, "집터가 엉망이에요. 그 집 대문이 귀신 통로예요!"
 "가끔 으시시한 느낌은 받았지만 그냥 살았어요.
 몇 번이고 집을 옮길까 생각했지만, 형편상 그냥 오랫동안 살게된 거지요."
 넷째와 다섯째로 이어지니 끝이 날 줄 몰랐다.

'짧게는 100일이요, 길어지면 1천 일인데….'
 기도를 얼마나 해야 나을 지는 사실 나도 몰랐다.
"20년 고생했는데 1년이면 어떻겠습니까. 나을 수만 있다면요."
아이 어머니는 계속 눈물만 지었다.
"순서대로 합시다. 첫째는 영가천도요, 둘째는 집터 수정이요,
셋째는 이 아이와 함께 치성 기도하는 겁니다."
 처녀의 천의일을 받아 묘행(妙行) 스님과 동참하여 천도제를 올렸다.
기도 중 <축귀부>와 <관성제군 부적>을 불에 살라 옥수에 타서 발원사를 드린 후 처녀에게 뿌려주니
처녀는 침 속에 흰 거품 같은 것을 수없이 뱉어냈다.
경명주사는 한방에도 쓰는 약재이다. <축귀부>와 <옥추부>를 불에 살라 마시게 했다.
경명주사는 곱게 갈아서 맑은 물에 여러 차례 걸러낸 후 불에 얹어 오래 굽는다.
이것을 참기름에 타서 부적으로 쓴다.
이번에는 더욱 많은 양, 마치 가래와도 같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수행의 기도는 계속 됐다.
다음날 처녀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왕십리 골목에 있는 집인데, 대문이 사당 입구의 문처럼 돌출돼 있다.
온 골목의 바람이 스산하게 그 집 대문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대문 옆에 셋방이 있고, 부엌은 옛날식으로 바닥이 깊게 내려가 있다. 그 옆으로 방이 2개인데 조그만 마루가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 옆 셋방 어때요? 몹시 나쁜 기운이 도는데…."
 "네. 그 방에 세를 든 사람들은 얼마 못가 몸이 아프다고…. 사람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그 방에 세든 사람이 돈도 빼가지 않고 시골에 갔다온다고 나가 몇 달이 됐는데,
방만 빼달라고 전화만 하고는 오지 않는군요."
 집터가 참으로 악상(惡相)이었다.
왜 악상인지는 집 터 귀신 얘기를 할 때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빨리 이사가는 게 상책이네요. 이사 계획 안 잡았나요?"
 "금년 10월쯤 일산 주공아파트에 입주하기로 했어요."
 '다행이로군.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뜻이구만.'
악상의 집터가 처녀를 범하지 못하도록 먼저 처녀의 방 중간 천정에 부적을 붙였다.
잠자는 요판에도 부적을 넣어주고, 내의의 등쪽과 앞쪽에는 옷에다 직접 부적을 썼다.

도량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의 첫 명상 때보다는 맑은 빛이 선명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지나가고 할머니의 굳은 얼굴이 펴지면서….
 1주일 후 처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 며칠, 아이가 잠만 자요. 하루 종일 잠만 자요. 어떡하죠?"
 "그 동안 계속 설쳐댔으니 좀 힘들었겠어요. 이상 있으면 다시 연락하세요."
 21일째 되는 날 처녀를 데려왔다.
일주일에 한번씩 입혔던 부적 내의도 함께 가지고 왔다.
처녀의 눈은 꽤 맑아 있었다.
묻는 말에 제법 똑똑하게 대답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말을 더듬거나 말끝에 웃는 버릇은 여전했다.
처녀를 앉혀놓고 <병살항마부>를 아이의 가슴에 붙였다. 주문을 외었다.
"옴 소마니 소마니훔 하리한나 하라한나 훔 하리한나 바나야훔 아나야혹 바아밤 바아리훔 바탁"
 7번을 연거푸 왼 뒤 죽비를 3번 두드렸다.
<축귀부>를 옥수에 타서 얼굴 등 머리에 약간 뿌려주니, 또 지난번처럼 몸부림을 치며
 하얀 거품이 섞인 침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약 20분 정도 지나자 처녀가 알 수 없는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동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암코양이가 새끼를 밴 후 지르는 괴성 같기도 하고
 하여튼 한참동안 울부짖었다.
<옥추경> 내에 들어있는 <멸조오요사부>와 <유숭제요무사부>를 향로에 살랐다.
옥수에 타서 뿌려준 후 왕천군 구마심주를 염력으로 외었다.
"옴 우우 금즐 금즐…."
한참을 외니 괴성을 질러대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괴성과 함께 고양이의 원령이 빠져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