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원혼.1 --- 스포츠조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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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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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20대 처녀 상담…"잘못하면 내가 먹히겠는걸…"
 
몇 해 전 초봄이었다. 멀리 천호동에서 출장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범상치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하면 내가 당하겠는걸.'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에겐 그런 느낌이 온다.
 때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떤 조짐이 강하게 다가온다. 이번이 그랬다.
그러나 평소 잘 알던 S부인의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다음날 S부인의 집이 있는 천호동으로 갔다.
그 집엔 S부인의 친척인 60대 초반의 여인과 20대 처녀가 어린 애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처녀는 몹시 산만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 다음에는 웃었다 울었다, 잠시만 옆에 있어도 정신이 분산될 정도로 어지러웠다.
서둘러 득괘를 하고 보니 역시 심상찮았다.
처녀는 어릴 적에 이상이 생긴 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묘귀토혈(墓鬼吐血)의 괘에다 관귀(官鬼) 지세(持世)였다.
양귀쟁읍(兩鬼爭泣)으로 머리[頭]와 다리[足]가 영 불안했다.
사주를 살펴보니 무신(戊申) 무오(戊午) 기술(己戌) 무신(戊申)이다.
'어라, 비구니나 수녀가 되거나 아니면….'
 "어려서 큰 일 겪었나요?"
 자손이 옆으로 새어나와 숨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네 살 땐가 갑자기 열병을 앓았어요. 약을 먹여도 안되길래 죽는 줄만 알고 윗목에 그냥 눕혀 놨어요."
 그후 지능이 떨어진 듯한 징후가 보였단다.
"소녀 티를 벗고 숙녀가 되면서 한번 더 있네, 큰 환란이?"
 "열 여덟 살 때인가 학교에 갔다 오는데, 친구 둘이 부축해 데려왔어요.
정신이 나갔나봐요. 막 울어대며 누군가가 자기를 때렸다고 난리를 쳤어요.
그일 때문에 그나마 늦게 들어간 고등학교도 못 다니게 됐고,
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어요."
 구성판을 살펴보니 백호가 중궁에 들어 있었다.
'휴, 고생 바가지로 하게 생겼군.'
 그냥 가려고 일어서니 그 처녀의 어머니가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귀신병 잘 고치는 분이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 꼭 좀 살려주세요."
 '이 일을 어찌할꼬?' 참으로 난감했다.
"당신 딸 참 곤란해요. 이건 인간의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집터도 고약하고 문 앞으로 귀신도 나다니고."
 어떡하든 이 자리를 모면해야겠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여기선 곤란하니 압구정동 도량으로 찾아오시면 다시 봅시다."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어쩐지 집 떠날 때부터 꺼림칙하더니. 너무 세. 이를 어쩐다?'
 솔직히 잘못하다가는 잡아먹히게 생겼다는 의구심이 하루종일 가시지 않았다.
그 아이의 점괘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본 후 명상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널찍한 광장이었다. 묘한 형상을 지닌 인맥이 수도 없이 왔다갔다했다.
 옛날 옷을 걸친 형상의 머리에는 뭔가 하얗게 서려 있다.
새끼처럼 꼰 것을 머리에 감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섬뜩한 동물의 눈빛 같은 섬광이 수도 없이 확 지나갔다.
호랑이 눈은 아닌데, 어 어 어 고양이?
 순간 계속 쳐다봤으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냥 멍 하니 앉아 있다가 명상에서 깨어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족히 1시간은 넘었다.
아까 만났던 처녀의 어머니가 다음날 오전 11시에 방문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전화를 해왔다.
'휴우, 안보면 안될 운명인가보다.'
 그래도 1시간여 명상에서 뭔가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