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QUEEN - "곡절 많은 인생,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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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인테리어회사 사장-->신내려 무속인으로 살아가는 기 부적가 진영자

"곡절 많은 인생,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요"
 
기 부적가 진영자씨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60년대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 대기업 과장을 거쳐 인테리어 사업가로 활약했던 그녀는 어느날 신꿈을 꾸고는 부적을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고 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 타인의 아픔을 어우르며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야기.

취재/사진 / 유인근 기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앞에 펼쳐질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한치 앞은 물론이고 먼 훗날 자신의 모습은 더욱 안개에 싸여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고 목표를 세워 더 나은 앞날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은 한 인간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의 생각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이 휩쓸려 가는 경우가 있다.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생경한 세계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의 노력은 그 힘 앞에 무력해져 버린다. 그 힘, 불가항력의 그 힘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강남구 논현동 구천선사에서 기 부적을 그리는 법사 진영자 씨는 그런 운명의 주인공. 알 수 없는 인연과 운명에 이끌려 곡절 많은 삶을 살고 있는 이채로운 인생의 소유자다.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아요. 저는 바로 그런 운명의 힘에 이끌려 살아왔어요. 때로 부정도 해보고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어요. 지금은 그 운명에 충실하며 살아요."
 
진영자 씨는 여학생이 드물던 60년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인텔리 여성이다. 그녀의 집은 당시에 꽤나 이름을 날리던 모 그룹 총수의 일가여서, 어린 시절 부러운 것이 없었을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어요. 그때 우리 집은 얼마나 컸던지 대지 2백50평에 정원엔 커다란 연못이 있는, 광주에서는 알아주는 집이었지요. 부모님들은 장녀인 저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당시에는 드물게 여자인 저를 대학에 보내셨어요. 상학(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과에서 홍일점이었어요. 인물도 반반해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구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집안에서 맺어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을 때까지도 그렇게 그녀의 인생은 순조롭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최고 학부인 S대 경영대학원까지 나온 남편과 이룬 가정은 몇 년이 가지 않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불화가 계속되면서 결국 이혼을 했고 둘 사이에 난 아들은 그녀가 맡아 키우기로 했다. 이혼은 그때까지 어려움 없이 자랐던 그녀의 인생에서 벌어진 첫 번째 시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혼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진씨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취직을 했다. 호남에선 잘 알려진 모 대기업이었는데, 친정 집안의 배경과 실력을 인정받아 과장 자리까지 무난히 오를 수 있었다. 5-6년 자금담당을 맡았던 그녀는 자연히 회사가 돌아가는 전반적인 사정을 눈에 익힐 수 있었고, 작은 사업쯤은 자신도 경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서른 일곱의 나이에 새롭게 시작한 일이 인테리어 회사였다.

"친정의 도움을 받아 제법 컸지요. 종업원이 20명이나 됐고 유명한 호텔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을 정도이니까요. 그때는 무엇을 해도 자신이 있었어요."
 
회사는 4-5년 번창을 했다. 일거리가 넘쳤고 돈도 꽤 벌게 되자 스프링쿨러를 생산하는 등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잘 나가던 사업이 어느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파이프 파동'이 벌어져 몇 천원 하던 자재가 하루아침에 몇 만원으로 폭등했고, 거래처로부터 대금도 회수되지 않았다. 불황에 자금난까지 겹치자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 몇 번의 사업 실패, 끝없는 좌절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인연 >>
 
"회사를 살리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어요.전 재산을 털어 넣고 이리저리 빚도 졌지만 끝도 보이질 않았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그래서 하도 답답해 아는 분의 소개로 곽 도인이란 유명한 역술가를 찾아갔지요. 철저한 기독교 신자였던 제가 그런 곳엘 다 찾아갔으니 속이 얼마나 탔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그 노인이 참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전생에 제가 도인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팔자에 알거지가 되고 만다는 거예요. 그때는 하도 엉뚱해서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죠."
 
곽 도인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개월 후 진씨는 곽 도인의 말처럼 모든 재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의 알거지가 되고 만 것이다. 재기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일이 꼬이면서 악순환이 계속됐고 결국 회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도 비참해서 죽으려고 마음먹기를 여러 번, 그때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어린 아들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마음처럼 자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없이 작아져버린 자신의 모습. 모든 것을 잃고 나니 집착할 것이 없어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때부터 진씨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과연 전생이란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진씨는 그 의문을 스스로 풀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귀의했고 역술협회를 찾아 성리학과 명리학을 배웠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의 힘에 이끌려 휩쓸려 가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캐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씨에게 흔히 무속에서 말하는 신이 찾아왔다고 한다. 갑자기 몸을 시름시름 앓더니 2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밤마다 고열에 들떠 신음했다. 원인도 없이 그녀의 숨통을 조이던 신열은 찾아왔을 때처럼 또 한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20일만에 일어났을 때 그녀는 몸에서 이상한 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마치 한 잠을 자고 난 후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몸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는데 알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그후부터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이 보이는 거예요."
 
더욱 신비로운 일은 85년 초 지리산 화엄사를 찾았을 때 벌어졌다. 화엄사 법당에서 밤이 이슥토록 '관세음보살' 만 번 기도정진 하던 중이었다.

"기도 중인데 갑자기 법당 문이 열리더니 더벅머리에 두꺼운 솜옷 저고리를 입은 40대 사나이가 짚신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에요. 그리곤 부처님께 큰절을 넙죽 하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했지만, 그 사내를 쫓아 법당 문을 나오니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훈훈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더군요. 화엄사 경내엔 세상에 있는 모든 별들이 내려앉은 듯 반짝이고 있었어요. 같이 기도를 했던 스님이 그러데요. 그 사나이가 바로 전생의 제 모습일 거라고…."
 
그 경험은 데리고 갔던 아들도 함께 했다. 아들은 그 뒤부터 갑자기 공부를 잘했고 생전 음악공부도 하지 않았는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해 지금은 유명작사?작곡가로 활약한다고 한다. 진씨 자신에게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부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붓글씨를 배운 적도 없는데 붓을 들고 부적을 술술 그렸다.

<< 부적에 담는 인생 이야기 2백여 점 모아 전시회도 열 계획 >>
 
"부적을 그릴 때는 맑은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립니다. 부정한 마음이나 사사로운 잡념이 생기면 아무 쓸모 없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아요. 과학적으로 부적의 힘이 무엇이라고는 증명할 수 없지만 다만 복을 기원하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마음과 소망이 아름답게 보이고, 제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이젠 아픔을 보듬어주는 의사처럼 보람을 갖고 살아요."
 
처음엔 그런 것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해 갈등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신비로운 힘은 더욱 진씨를 거세게 붙잡았고, 결국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신이 내려준 신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부적을 그리는 것에 몰두하면서 과거의 시련이 회한도 후회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진씨에 관한 소문도 꽤 알려져 지금까지 어림잡아 3만여 점 이상의 부적을 썼다고 한다. 그 중에는 부적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난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 진씨의 말이다. 그녀는 3년 전부터는 기의 운행을 익혀 기(氣)와 부적을 합치시킨 기 부적을 그리고 있다.

부적은 역술에서 천지가 합치는 시간인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부터 축시(오전 1시-3시)에 쓴다고 한다. 종류도 다양해 손바닥만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은 가로 66㎝ 세로 1백32㎝에 이르는 대형이다. 큰 부적을 그리는 것은 일주일 정도 밤을 새울 만큼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는 힘든 줄도 모르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린 부적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작은 위안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힘이 난다고 한다.

진씨는 부적을 단순히 미신으로 터부시 여기기보다는 민속신앙의 하나로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녀의 생각에 부적은 사라져 가는 우리 옛 조상들의 흔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도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획 한 획 붓을 놀릴 때마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 캔버스를 마주하고 그림에 심혈을 기울이는 여느 화가나 다를 바가 없다.

"부적은 제각기 독특한 작품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술사적인 가치도 큽니다. 그 동안 제가 그렸던 만인의 백부와 백복을 기원하는 부적 등 크고 작은 2백여 점을 곧 전시할 것입니다."
 
그 전시회 준비로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진씨다. 그리고 기반이 잡힌다면 언젠가는 우리 나라의 희귀한 부적들을 모아 전시관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