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 신의 명령서 - 기(氣)부적의 대가 구천도사 진영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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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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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명령서 - 기(氣)부적의 대가 구천도사 진영자씨
 
우리한민족의 신앙 기반이 되어 온 무속은 오늘날에도 민간층에 폭넓은 기반을 갖고 있는 살아있는 종교이다. 사주팔자와 운명을 가늠하는 역술과 굿, 그리고 부적은 답답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다.
 
이 가운데 부적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오는 이른바 신의 명령서로 무속을 대표하는 민중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부적의 기원은 원시시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 달 짐승 새 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실린 처용설화에서도 부적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통일신라의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은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노래와 춤을 통해 물리치는데, 그 이후로 처용의 얼굴을 그려서 대문에 붙이면 역신이 무서워서 감히 그 집에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 부적은 속옷과 각종 팬시용품, 그리고 인터넷 이 메일에도 사용될 만큼 널리 대중화 되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부적을 잘 쓰기도 이름나 있는 무속인으로는 강남구 논현동의 구천도사 진영자 씨를 들 수 있다. 서유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도교의 태상노군(太上老君), 즉 노자(老子)를 신으로 모시는 진씨는 무속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힘에 의 해 무속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자시(子時)에 기(氣)를 모아 부적 그린다.
 
그녀가 담담히 말하는 지난 삶의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만 같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었다. 젊은 시절 진영자씨는 모 그룹의 총수 일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 학부의 경영대학원까지 나온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남 보기에 전혀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순탄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유 없는 불화로 남편 사이에 금이 가면서 그녀의 삶에 시련이 닥쳐오기 시작한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상처와 자신이 맡아 키우기로 한 아들뿐이었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그녀는 너무 젊었다. 자식과의 생계를 위해 취업에 나선 진씨는 모 그룹에 입시하여 과장 자리에 이룰때까지 직장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 덕에 어느 정도 사업 수단을 갖추게 된 그녀는 자신감을 밑천 삼아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4~5년간 번창하던 사업은 어느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불황에 자금난까지 겹쳐 그녀의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독살한 기독교 신자인 제가 곽도인이라는 역술가를 찾아갔겠습니까? 그런데 곽도인은 제가 전생의 도인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않고 팔자에 없는 사업을 하게 되면 알거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지요"
 
하지만 , 몇 달 후 도인의 말은 현실이 되고 만다. 이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느껴 불교에 귀의한 그녀에게 이른바 무속에서 말하는 복(福)이 찾아온다.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2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밤마다 고열에 들떠 신음했다 원인도 없이 찾아온 신열은 20일 후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데 이후 그녀에게 남의 운명을 볼 수 있는 이상한 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지리산 화엄사에서 기도에 몰두하던 그녀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또 생겨난다.
 
"한참 기도 중에 갑자기 세상에 있는 모든 별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더벅머리에 두꺼운 솜옷을 입은 40대의 더벅머리 사내가 불쑥 법당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쳐다보았더니 그는 부처님께 큰절을 넙죽하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잠시 헛것을 보았나 하고 의아해 하는데,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제게 말 했습니다. 그 사나이가 바로 저의 전생의 모습이라고요" 지리산에서의 신비한 경험이 있고 난 후 그녀에게는 새로운 신통력이 생겨나게 된다. 배운 적도 없는 붓글씨로 부적을 술술 그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부적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효과가 좋은 경신일과 갑자일을 택해 목욕재계한 후에 동쪽을 향하여 정수를 올리고 분향한 다음 자시(子時)가 되면 정중한 자세로 기를 모아 부적을 그린다. 이 시간은 우주의 정보가 왕성하게 교환되는 시간이므로 음양과 천지인의 교감 또한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기의 운행을 익힌 후 부적에 기를 실은 그녀의 기부적은 보고 만지며 기원하는 사람에게 진기를 일으켜준다고 한다.
 
진씨가 그리는 부적의 형태도 다양해 부적을 받는 사람의 운세나 기원하는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후 상태에 따라 처방을 하듯 부적도 그 사람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적은 나쁜 살이 낀 것을 풀어주고, 어떤 때에는 횡액을 예방하며, 사업 운을 기원해주고 질병을 고쳐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결혼운까지도 트이게 해준다. 실제로 그녀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진씨가 그린 부적은 무려 3만 여점이 넘는다. 작게는 손바닥만한 것에서부터 크게는 지난 96년 초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그려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가로 132cm에 이르는 초대형 부적에 이르기까지 시로 다양하다. 덕분에 부적의 대가로 장안의 명성이 자자하고 TV에도 여러 번 출연한 그녀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일 줄을 모르고, 같은 무속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녀의 신통력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기자가 직접 진씨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그녀의 부적과 신통력을 필요로 하는 전국각지의 사람들과 무속인들의 부각지의 사람들과 무속인들의 부탁이 방명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부적을 미신으로 천시하지 말고 민속신앙의 하나로 존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부적은 제각기 독특한 작품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술사적인 가치도 큽니다.."
 
앞으로의 희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문을 연 진씨는 머지않아 기회가 닫는다면, 우리나라의 희귀한 부적들과 자신의 부적들을 모아 "부적 전시관" 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 최첨단의 시대 속에서도 정부청사와 계롱대 같은 관공서의 위치를 지관이 결정하고, 합격을 기원하는 부적이 신세대들에게 엄청나게 판매되는 현상은 아마도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비한 능력을 우리전통의 무속이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미국의 어느 갑부에 의해 우주 탐사가 관광이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도 구천도사 진양자 씨가 기부적의 대가로 장안에 명성이 가득한 이유도 그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